2학기 개강에 즈음한 교수회 성명
2학기 개강에 즈음한 교수회 성명
2학기가 시작되었다. 긴 방학 후에 맞이하는 새 학기는 활기와 기대가 넘치는 모습이어야 할텐데, 대학의 위기를 반영한 학과 구조조정 소식과 더불어 시작하는 새 학기가 마냥 편하지만은 않다. 이번 2학기는 현 본부 출범 1년을 마감하고 2년차를 시작하는 학기이기도 하다. 지난 1년간 학내외적으로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우리에게 주어진 크나큰 도전과 기회에 어떻게 대응하느냐가 대학의 장기적 생존과 발전 여부를 결정하는 중요한 시기다. 교수회는 그동안 대학 본부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많은 교수들이 토로해온 우려와 기대를 담아 몇 마디 고언을 드리고자 한다.
첫째, 총장의 역점사업으로 추진되었던 공간재배치 사업의 현재 모습은 거의 난파선에 다름 없다. 추진 과정에서의 무수한 파행으로 보나 그 결과의 합리성에 있어서나 결코 납득하기 어렵다. 무리한 공간비용 징수는 교수들의 연구환경을 악화시키거나 공정성 시비를 일으켰고, 불필요한 공간 이동이나 계획에도 없던 공간 배정 등은 가뜩이나 어려운 학교 재정의 낭비로 이어졌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연 그동안 무엇이 이루어졌는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아있다. 본부는 공간재배치 사업을 두루뭉수리하게 넘기려 하지 말고 확실히 마무리해야 한다.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여 학교 공간의 효율적 배치 계획을 수립하고 그 과정에 구성원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여 합의를 구해야 한다.
둘째, 대학재정의 어려움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정이다. 우리가 누차 요구하였듯이 재정이 어려울수록 효율적인 재정운용계획을 수립하여 필요한 곳에는 재정 부족으로 인한 업무의 차질이 없도록 배려하고 불요불급한 부분은 과감히 도려내는 조치가 필요하다. 그러나 본부는 이러한 포괄적인 계획도 없이 재정 부족을 빌미로 대학의 핵심 역량을 위축시키고 구성원 복지를 깎아내는 일들을 무차별적으로 시도하여왔다. 그 결과로 이룬 균형예산 달성을 성과로 내세우고 있고, 이사회는 한 술 더 떠서 앞으로도 계속 균형예산을 맞추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핵심 역량을 훼손하면서 이룬 균형예산이라면 이는 무의미한 숫자놀음일 뿐이다. 수치에 불과한 균형예산에 매달리기보다는 그것이 균형이든 적자 혹은 흑자이든 간에 중장기적 계획하에 대학 발전에 필요한 재정운용을 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더 이상의 구성원들에 대한 처우의 악화는 없어야 한다. 그리고 현재도 많은 구성원들이 비합리적인 재정지출에 대한 의구심을 표하고 있음을 감안하여 보다 효율적인 재정운용에 만전을 기할 것을 요구한다.
셋째, 대학의 핵심기능이 연구와 교육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이는 대학의 본질이자 장기적 생존의 근거이기도 하다. 당장의 살림살이가 곤궁하다 해도 연구와 교육의 진작을 고려하지 않은 대책은 대학을 고사시키는 지름길일 뿐이다. 대학 본부는 그동안 이러한 핵심기능의 육성을 통한 장기적 생존보다는 당장의 재정적 어려움을 타개한다는 단기적 목표에만 급급하여 학과 조교 축소, 공간비용 징수, 연구비 축소 등 교육과 연구에 악영향을 미치는 조치들을 연 이어 내놓고 있다. 최근 운위되고 있는 학과 구조조정 안에서도 본부의 교육에 대한 철학 부재가 명확히 드러난다. 대학의 학과는 기업의 조직이나 공장의 생산라인처럼 경기에 따라 단기적으로 늘리거나 줄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교육서비스의 특성상 서비스 공급자도 공급역량을 갖추기 위해 오랜 세월을 투자해야 하고, 수요자인 학생 역시 학과를 선택할 때 장기간의 학업 및 사회생활에까지 지속될 영향을 고려하여 결정한다. 또한 서비스의 원활한 공급을 위해 수업의 규모와 시간, 과목의 편성 등이 모두 균형있게 고려되어야 한다. 구조조정은 그래서 지극히 신중하고 민주적인 절차에 따라 결정되어야 하는 것이다. 지금 본부는 대학평가의 배점 변동을 이유로 납득하기도 어려운 지표에 기반한 구조조정안을 전격적으로 밀어붙이려 하고 있다. 이러한 행태는 용납할 수 없으며 구조조정에 관한 거교적 합의가 선행되어야 한다.
넷째, 그동안 수많은 시행착오로 인하여 본부 행정에 대한 신뢰감이 현저히 떨어지고 있다. 행정개혁을 추진하던 부서는 어느날 아무런 해명도 없이 사라지고 행정을 조율해야 할 본부는 체계적인 정보공유와 협조체계를 갖추지 못한 채 각개약진하는 모습들을 노정하였다. 그 와중에 일관성 없는 행정, 조변석개식 행정, 현실과 괴리되는 무리한 행정들이 속출해왔다. 그러다보니 구성원들 사이에서 본부의 말을 믿을 수 없다는 불만이 제기되고 있다. 이러한 행정의 난맥상은 충분한 사전 검토와 준비작업의 부재, 그리고 구성원들과의 소통 부재에서 비롯된다. 많은 구성원들이 본부의 행정에서 구성원들의 구체적 사정이 배려되지 못하는 모습에 실망감을 토로하고 있다. 행정은 본부의 의욕과 생각만으로 할 수 없다. 보다 신중하고 합리적인 결정과 구성원을 존중하는 집행 태도가 요구된다.
마지막으로, 무엇보다 구성원들이 우려하는 바는 과연 본부가 이 대학을 어디로 이끌고 가고 있는가에 대한 것이다. 구성원들은 급격히 악화되고 있는 환경하에서 과연 우리 대학이 장기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지, 그렇다면 어떤 방법과 모습으로 그렇게 될 수 있는 것인지를 절박하게 묻고 있다. 이는 본부 출범 당시부터 줄곧 제기된 질문이었고 이에 대해 본부는 방학 이후에, 학과발전계획을 받아서, 라는 식으로 계속 답을 미루어왔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도 본부가 학과들이 제출한 발전계획을 어떻게 수렴하여 어떠한 중장기발전계획을 수립하였는지 알지 못한다. 지난 1년간 본부가 중장기적 계획하에 확실한 목표를 가지고 대학을 이끌고 간다고 믿을 수 있는 모습은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지금 대학을 둘러싼 환경은 그 불확실성의 파고가 극히 높아져 가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미래에 대한 확고한 방향과 플랜을 제시하고 구성원들과 끊임없이 소통하여 에너지를 모으고 신뢰를 확보함으로써 단합된 힘으로 난관을 극복해나가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과연 지난 1년간 대학 본부가 그러한 리더십을 발휘한 적이 있었는지, 지금이라도 그러한 자세를 갖추고 있는지 스스로 자문해보기 바란다. 그리고 이제라도 구성원들이 바라는 답을 성실하게 내놓기 바란다.
지금 모든 지방 사립대학이 그러하듯 우리 대학 역시 매우 어려운 지경에 처해 있다. 그러나 본부는 어려움을 빌미로 단기적인 임기응변식 처방을 남발하고, 본부의 독단을 정당화하며, 구성원들을 주눅 들게 만드는 저급한 경영에의 유혹을 끊어야 한다. 장기적인 비전과 계획하에 대학을 이끌고, 구성원들과 소통하고 합의하는 자세를 갖추며, 구성원들의 사기를 진작시키는 품격있는 경영을 해야 한다. 물론 이러한 일이 쉽지 않음은 안다. 그럼에도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것이 대학 경영을 맡은 이들의 소명이다. 다 이루지 못하더라도 본부의 그러한 노력을 구성원들이 보고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하여 새 학기의 시작이 다시금 새로운 기대와 반가움으로 설레이는 시간이 될 수 있도록 심기일전 노력해주기를 바란다.
2019년 8월 30일
대구대학교 교수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