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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 행정의 조건

등록일 2020-06-15 작성자 교수회관리자 조회수 4391

‘명품’ 행정의 조건

함 요 상 교수(도시행정학과)


  초등학교 저학년 어느 날, 나는 집 안 장롱에서 검고 가벼운 카메라를 발견했다. 당시 우리 집에는 카메라가 없었기 때문에 다들 이게 왜 여기 있는지 궁금해했다. 그러나 진실이 밝혀지는 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 자리에 없었던 유일한 사람이었던 아버지가 사다 놓으신 것이었다. 그런데 그걸 왜 떳떳하게 그리고 자랑스럽게 가족에게 알리지 않고 장롱 속에 숨겨두신(아버지는 그냥 놔둔 것이라고 주장하셨다) 것일까?

  사정은 이러했다.

  아버지는 회사 전무와 강릉으로 시외버스를 타고 출장을 가고 있었고 주문진에서 승하차 겸 잠깐의 휴식을 하고 있었는데 두 명의 남자들이 버스에 올라오더니 너무 좋은 물건을 회사 사정으로 싸게 팔려고 하는데 다 드리지는 못하고 추첨을 통해 당첨되는 분들에 한해서만 판다고 하더란다. 그러고는 한 사람이 번호표를 나눠주고 다른 한 사람이 번호를 불렀는데 바로 아버지 번호가 당첨되었다는 것이다. 물건은 시계와 카메라였고, 아버지의 의심은 전무님이 돈을 반 낼 테니 같이 사자는 말에 확신이 되어 결국 샀고 시계는 전무가, 카메라는 아버지가 갖고 오게 되신 것이었다. 그날 밤 아버지와 어머니는 다투셨는데 사실 아버지가 어머니께 일방적으로 당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인터넷 검색 한 번이면 가격, 품질, 브랜드, 사용후기까지 모두 비교할 수 있는 요즘 이런 얘기는 그야말로 웃긴 어린 시절의 추억이라 할 수 있는데 그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면서 명품행정의 조건을 생각해 보고자 한다. 특히, 우리 대학의 행정이 좀 더 명품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서 적어본다.

 

의제설정 과정 필요

 

   행정은 구성원의 사회적 욕망을 충족하는 노력이나 과정으로 정의될 수 있다. 다시 말해 어느 조직이든 목표가 있고 구성원들의 욕망-적어도 사적(私的) 욕망이 아닌-이 있다. 행정은 구성원의 공적 욕망을 충족하면서 조직의 목표를 달성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행정은 공적 욕구의 충족을 위해 무엇을 할지를 늘 고민하고 결정해야 한다. 바로 이 지점에 명품행정의 첫 번째 조건이 있다.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한 판단을 의사결정권자 혼자 하지 않는 것이 필요하다. 조직의 리더라고 해서 모든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 무엇을 할지를 공론화하고 다수의 의견을 들어보고 필요성을 따져보는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 행정에서는 이러한 과정을 아젠더 세팅(Agenda setting)’이라고 한다. 의제설정이 잘못되면 불필요한 돈과 시간을 낭비하는 헛수고를 하게 된다. 의제설정 과정이 없는 결정은 독재국가에서나 있는 실패의 지름길이다. 뜬금없이 결정된 아버지의 카메라는 우리 가족 누구도 만족시키지 못한 악수(惡手)가 된 것처럼.

 

효과의 분석은 결정의 질을 제고

 

   요즘 물건을 하나 사기 위해서 구매후기라는 것을 읽게 되는데 가성비 좋은 물건이라는 후기를 읽게 되면 구매할 확률이 높아진다. 가성비는 투입된 비용에 비해 효능감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가뜩이나 사고 싶은데 가성비까지 높다니 의심을 확신으로 바꿔주기에 충분하다. 행정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여러 대안 가운데 최선의 대안을 선택하는 과정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떤 대안이 최선인지를 판단해야 하며, 일종의 가성비를 따져보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바로 여기에 명품행정의 두 번째 조건이 있다. 검토된 대안들의 투입비용과 각 대안들이 가져올 산출 효과에 대해서 예측하고 분석해야 한다. 분석된 결과들은 모두 목표달성에 나름의 가성비를 보일 것이고 사람들은 각자의 입장에 따라서 특정 대안을 지지할 것이다. 그리고 왜 내가 이 대안을 지지하는지를 밝히고 상대를 설득하는 과정을 거치게 되는데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결정의 질은 제고된다. 여러 대안을 분석하지 않고 있다면 적극적으로 하길 바라고, 분석하지 못하고 있다면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기 바라며, 여러 대안 자체가 없다면 더 말할 필요도 없다. 버스 안에서 사느냐 마느냐만 주어졌던 우리 아버지처럼.

 

과정과 결과의 공개는 행정의 정당성을 부여

 

   행정이 지향하는 수단적 가치 중에 하나가 투명성이다. 행정은 국민 개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제한할 수 있는 권력적 작용이기 때문에 파급효과도 매우 크다. 만약 그 대상이 재산권인 경우에는 편익을 얻거나 손해를 보는 다수의 사람들을 극명하게 나누기도 한다. 그러므로 행정은 태생적으로 결정의 과정이나 결과를 공개하지 않거나 늦추려 한다. 어쩔 수 없다면 최소한으로만 하고 싶어한다. 투명성은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지만 그것을 통해 공공성이나 정의를 확보하여 행정의 정당성을 부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충분한 가치가 있다. 그러나 단순히 공개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하며 여기에 명품행정의 세 번째 조건이 있다. 행정의 과정과 결과는 투명하게 공개하되 동시에 적극성과 명시성(明視性)을 반드시 갖춰야 한다. 인사위원회 위원에게 개인정보가 포함되어 있다는 이유로 회의 전에 어떤 자료도 제공하지 않는 것은 소극을 넘어 오만이다. 학교의 중요한 의사결정을 하는 회의에서 누가 어떤 말을 했는지도 알 수 없는 회의결과만 있는회의록은 익명성 뒤에 숨어 책임을 회피하게 하는 방편이 된다. 개인정보 유출이 걱정된다면 보안각서를 통해 유출 시, 형사적 책임을 묻는 정도의 적극성을, 회의록은 누가 무슨 말을 했는지 명시성을 보완하여 책임성을 높여야 할 것이다. 각종 결정의 세밀한 공개와 성실한 소명은 기본이다. 지금 생각해 보니 카메라 샀다고 왜 말하지 않았냐?’도 아버지가 궁지에 몰리는 주요한 공격 포인트였다.

 

자는 사람은 깨울 수 있어도 자는 척하는 사람은 깨울 수 없다.”

 

   행정도 결국은 사람이 하는 것이다. , 행정을 하는 주체도 사람이고 행정의 대상도 결국은 사람이다. 그러므로 행정 역시 사람 간의 관계가 중요하고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중요하다. 사람은 상대방의 태도를 아주 미세한 변화까지 기가 막히게 인식할 수 있다. 백화점에 옷을 사러 가는 아내가 판매원의 미세한 태도 변화에 불쾌해하지 않기 위해서 옷매무새를 다듬는 것에 명품행정의 네 번째 조건이 있다. 고객이 누구이건 간에 존중하고 동일한 신뢰를 보내는 서비스 마인드를 장착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물건을 살 것 같은 고객에게만, 자신에게 불리한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 같은 고객에게만 친절하고 그렇지 못한 고객에게는 미묘한 태도의 변화를 일으켜 불쾌함을 은근히 전달하는 그런 판매원 같은 행정이 되어서는 안 된다. 물론 진상 고객도 있고, 악성 민원인도 있다. 그러나 백화점도 그러하듯 행정도 일단은 행정이 태도를 누그러뜨리는 것이 먼저다. 왜냐하면 정부는 국민이 구성했고 헌법 제7조는 공무원들에게 국민 전체에 대해 봉사하고 책임을 지라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친절한 듯하지만 미묘하게 자신의 불쾌함을 전달하는 사람, 오류나 잘못을 알면서도 인정하지 않고 고치려 하지 않는 사람, 더 좋은 대안이 있음에도 눈감고 현실에 안주하여 편안함을 추구하는 사람이 없어야 한다. 자는 사람은 깨울 수 있어도 자는 척하는 사람은 깨울 수 없기 때문이다. 괜찮은 카메라라며 일본어로 되어 있는 아마도품질보증서를 흔드시던 아버지는 그 후 오랫동안 집안 물건 구매에서 배제되셨다.

 

   지금까지 명품행정의 조건을 몇 가지 살펴보았다. 이 글에 어떤 사람은 동의하고, 어떤 사람은 동의하지 못할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명품행정은 사실 존재하지 않는다. 어디 별도로 나 명품입네라고 하는 실체로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알고 있는 명품 물건들도 처음부터 명품으로서 자리매김한 것은 아니며 명품이었다가 어느 순간 그냥 그런 물건으로 취급받는 경우와 같은 이치다. 그러므로 명품으로 가는 과정이 중요하다. ‘다수를 만족시키는 정당성높은 행정을 하면 명품이 되고 소수만이 고집하는 행정을 하면 싸구려가 될 뿐이다. 부디 우리 학교의 행정도 명품행정의 모습을 보이길 기대한다. 우리 아버지의 그 옛날 싸구려 카메라처럼 말고.

 

   그 카메라는 어떻게 되었을까? 궁금해하실 것 같아서 말하자면, 그 카메라는 단 한 장의 사진도 남기지 못했으며 며칠 간은 내 장난감이었고 결국은 쓰레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