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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교수노조는 무엇인가?

등록일 2020-03-16 작성자 교수회관리자 조회수 3766

대학에서 교수노조는 무엇인가? 

 

  안 현 효 교수(일반사회교육학과) 

 

  최근 교수노조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4월이 되면 헌법재판소가 교수를 교원노조의 대상에서 제외한 교원노조법에 대한 위헌 결정을 해결해야 할 시한이 다가온다. 이에 대응해서 정치권에서도 교원노조법에 개정안을 제출하기도 했고 교수단체는 이에 대한 논평을 발표하기도 했다. 십수년 전만 해도 교수 사회에서 노조를 결성한다는 것은 대중적인 논의가 아니었는데 격세지감이라는 생각이 든다. 필자는 이 글에서 과거에는 왜 교수가 노조를 결성한다는 생각이 보편적이지 않았으며 지금은 또 왜 교수노조가 법적 테두리에서 논의될 수준까지 왔는가를 대학의 특수성과 노동조합의 일반성 속에서 생각해보고자 한다.

  우리나라에서 대학, 특히 우리가 몸담는 종류의 대학인 사립대학은 사립학교법과 고등교육법이라는 두 가지 법적 규제를 받고 있다. 사립학교법은 사립학교를 교육기관의 특수성을 반영하되 민법에 준하여 비영리법인과 유사한 지배구조를 인정한다. 따라서 교원의 인사권이 최종적으로 이사회에 있게 된다. 고등교육법은 교수의 법적 안정성의 지위를 부여한다. 이 두 가지 법적 규제는 실제의 사립대학 교수 인사권의 행사에서 서로 충돌하면서 문제를 야기할 때 궁극적으로는 법원이 유권해석을 내리는 구조를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이 두 법에서 교수의 사회적 지위를 명확히 규정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교수는 사용자인가? 아니면 노동자인가? 아니면 자영업자인가? 현대 사회에서 사용자, 노동자, 자영업자가 아닌 정규 수입자가 있는가? 그런 영역의 수입자는 대체로 불로소득자인 경우가 많다. 지주라던가, 금융자본가 말이다.

  교수라는 지위가 갖는 특이성은 대학이 무엇인가를 먼저 생각해보아야 풀 수 있다. 중세 서양의 대학은 학생이 교수를 고용하거나, 교수가 조합을 만들어서 학생을 모집하면서 시작했다. 근대자본주의가 전 세계로 확산되면서 이러한 서양의 제도가 우리나라에도 이식된 것이다. 국가가 교수를 고용하거나(국립대학의 경우) 대학설립자가 이사회를 만들고 이사회를 통해서 대학법인을 통제하는(사립대학의 경우) 오늘날에도 대학의 원래 전통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예를 들면 학사운영은 대학이 자치적으로 하도록 되어 있으며 이로 인해 학사운영의 주체들인 교수의 임용도 사실상 교수들이 주도적으로 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다 보니 실정법상으로는 이사회가 최종 권한을 갖지만 내용적으로는 교수들의 자치적 활동으로 대학과정이 운영되는 이중적 상황이 존재한다. 학생이 교수를 고용하는 초기의 모델은 없어지고 법인이 교수를 고용하는 모델이 정착되었지만 교수가 여전히 학사운영을 결정하고 있는 현실에서 교수의 인사관리는 교수가 하는 것인가, 법인이 하는 것인가? 만약 전자라면 대학은 교수의 자치조직이고, 후자라면 교수는 법인에 고용된 것이다. 실정법상 후자가 주도하고 내용상으로 전자가 여전히 남아있는 상황이 교수라는 직책이 노동자인가 아닌가라는 판단에 혼란을 주고 있다고 보여진다. 필자는 법인(또는 국가)의 피고용인이라는 속성이 자치조직으로서의 대학이라는 속성을 압도해가는 과정으로 대학의 변화를 이해한다. 그래서 교수가 피고용인으로서 노동자적 속성을 갖는 것이 현실화되었던 것이다. 이 경우 교수는 노동조합을 통해서 조합원으로서 자신의 이익을 지키고 유지해야 할 필요가 생긴다.

  하지만 해결되지 않은 문제는 대학이 자본주의적 기업처럼 고용인(국가 또는 법인)과 피고용인(교수)의 관계 속에 있지 않다는 점에 있다. 실제로 대학운영의 예산을 포함해서 대다수는 학사운영이고 학사운영의 행정은 총장을 비롯한 보직교수에게 위임된다. 실제로 사립대학법인의 이사회는 포괄적 권한만을 가질 뿐이다. 그런데 총장(임면 후에는 교수직에서 빠져나오긴 한다)과 보직교수들은 대체로 교수들이다. 즉 교수가 교수를 지휘, 통제하는 상황인 것이다. 그리하여 대학사회에서는 총장과 보직교수는 일시적으로 의제(擬制)자본가의 역할을, 평교수는 의제(擬制)노동자의 역할을 한다. 그래서 대학이라는 조직이 일반 사기업과 또는 사회의 다른 비영리법인과 유사하면서도 다르다. 그 차이는 도대체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그것은 대학의 수입원이 어디서 오는지를 보면 명확하다. 국립대와 사립대 모두 사실상 상당부분의 재원이 국가재원, 즉 사회에서 온다. 그렇다면 교수가 형식적으로는 피고용인으로서 노동자로서의 지위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으로는 사회적 요구를 해결하는 조직으로서의 대학 공동체의 구성원이라는 위상을 갖게 될 것이다(우리나라 사립대학의 국가지원 비중은 약 15% 수준인데, 구조조정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더 확대될 것이다). 결국 교수노조의 역할과 임무는 이러한 대학의 특성을 반영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교수노조는 당연히 노조로서 조합원의 이익을 반영하는 활동을 하게 된다. 하지만 교수노조로서는 국가적, 사회적 이슈에 대해 공적 역할을 다 해야 한다. 이 양자의 균형을 잘 유지하는 것이 교수노조의 사회적 위상을 결정할 것이다. 필자는 이런 관점에 서면 교수노조에 관한 쟁점의 상당부분이 해결된다고 생각한다. 우선 교수노조는 조합원 교수가 부당하게 해임을 당하거나, 조합원 교수의 근로조건을 향상시키기 위해 조직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다음으로 교수노조는 많은 쟁점 사안을 제기하고 해결하는 과정에서 국가적, 사회적 관점을 가진 공적 조직으로 자리매김해야 한다. 원래 노동조합은 숙련기술공들의 조합에서 유래한 것이다. 조직의 이익을 위해 만든 조직이지만 다수 조직이므로 민주적이고 민주적인 만큼 사회에 기여를 하게 되었다. 점차 노조가 사회에 보편화되면서 모든 근로자로 확대되었고 큰 사회세력이 되었다. 노동조합 일반도 단순히 조합원의 이익에만 머물지 않고 국가적, 사회적 의제에 관여하는 것이 당연하게 되었다. 교수노조는 더욱 더 그러하다. 우리나라에 자리잡을 교수노조는 그 위상에 걸맞도록 전국적 관점, 사회적 관점, 공적 관점으로 구성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