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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제현람(滌除玄覽)

등록일 2019-11-15 작성자 교수회관리자 조회수 3910

척제현람(滌除玄覽)

 

소 영 진 교수(도시행정학과)

 

우리는 지금 어려운 시절을 보내고 있다. 밖으로 학령인구의 감소, 중앙과 지방간 격차 확대, 불합리한 교육규제 등 온갖 위협들과, 안으로 학교재정의 어려움에 대해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고 있다.

 

그러다보니 모든 구성원들이 알게 모르게 위축되고 왜소해지고 있다. 정년이 많이 남은 교직원들은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고, 학교 발전을 위해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축소되어도 감히 이의를 제기하지 못한다. 학문 미래세대인 시간강사를 대폭 줄이고 그 강의 부담을 뒤집어써도, 느닷없이 조교가 없어지고, 공간 비용을 부담하고, 식대교통비나 통신비가 없어져도 학교가 어렵다니까별 군말 없이 수용한다.

 

그러나 이러한 사기 저하가 장기간 지속될 때 그 결과는 무엇일까? 공동체에 대한 애정은 식어가고 개인만 살길 찾고 보자는 이기주의가 팽배하게 되고 대학은 쇠락해갈 것이다.

 

이러한 위기는 우리나라의 대학들로서는 처음으로 겪는 것이겠으나 기업은 이러한 위기가 일상적으로 반복되는 조직이다. 위기를 자주 겪는 조직들이 그에 어떻게 대처하는지를 배워볼만 하다. 위기를 극복한 대부분 기업들의 공통점은 구성원들을 감싸 안고 함께 갔다는 점이다. 위기 극복의 원천은 무슨 새로운 재원, 경영기법이나 기술이 아니라 바로 사람임을 일깨워 주고 있는 것이다.

 

조직의 발전에 있어서 어려움이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다.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경각심을 가지게 되고 몸 담고 있는 조직의 안위를 먼저 생각하게 되며, 조직을 위한 희생도 감수하게 된다. 무엇보다 어려움을 함께 뚫고 나가는 과정에서 결속력과 추진력이 배가되기도 한다.

 

그러나 어려움이 미래를 위한 쓴 약이 되기 위해서는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들이 구성원에게 정당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어야 한다. 조직의 운영이 합리적으로 이루어져서 구성원들이 필요 이상의 희생을 감내하는 일이 없어야 하고, 구성원들에 주어지는 혜택과 비용부담이 형평성 있게 이루어져서 신상필벌의 원칙이 바로 세워져야 하며, 희생을 감내하는 구성원들에 대한 따뜻한 배려가 있어야 한다. 이 모든 일들은 위기를 극복하며 조직을 이끌어 가는 리더가 가장 중요하게 챙겨야 할 일들이다.

 

노자 도덕경에 척제현람(滌除玄覽)’이란 말이 나온다. 거울을 깨끗이 닦듯이 마음을 정화해야 한다는 수신의 도리로 해석되기도 하고, (군주가) 섬돌을 닦아주듯이 낮은 자세로 세심하게 백성을 살피라는 치세의 도리로 해석되기도 한다. 지금 우리 대학의 지도자들이 새겨야 할 말이 아닐까 한다. 어렵다고 사람을 가벼이 여기면 안되고 어려울수록 사람의 귀함을 깨달아 정성껏 섬기는 섬김의 리더십이 필요하다. 도표와 숫자, 서류만으로 조직을 파악하고 방향을 정하는 것은 올바른 리더의 자세가 아니다. 사람을 볼 수 있어야 한다.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이 조직생활에서 느끼는 문제나 감정이 무엇인지를 세심하게 살피고 귀를 기울여야 한다.

 

사람을 서푼짜리로 취급하면 서푼짜리 사람이 되고, 한 냥짜리로 취급하면 한 냥짜리 사람이 된다는 옛말이 있다. 그동안 대구대의 리더들은 구성원들을 서푼짜리로 취급했는가 한 냥짜리로 취급했는가 스스로 자문해보기 바란다. 구성원들을 서푼짜리 인간으로 만들어 놓고 대학의 위기를 극복하겠다는 건 공염불에 불과함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