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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대학 상황에 대한 소회

등록일 2019-10-16 작성자 교수회관리자 조회수 3867

현 대학 상황에 대한 소회

 

 원 효 식 교수(생명과학과)   

 

신입생 등록률, 재학생 충원율, 수시 경쟁률 등 학과경쟁력과 관련된 지표가 발표될 때 마다 가슴을 졸이게 된다. 가뜩이나 지표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학과의 순위가 발표될 때면 헤어 나오지 못하는 낮은 경쟁률에 자괴감이 든다. 편제조정부터 시작해서 특성화사업(CK), 학과 통합, 단대 통합 등 최근 7-8년간의 시간은 어찌 지내왔는지 생각이 나지 않을 정도로 급한 격랑 속을 헤쳐 나온 것 같다. 그런데, 학령인구 감소로 인한 대학의 구조조정은 이제 시작이란다. 눈앞에 닥친 대학의 어려운 현실 앞에 대학의 비전, 이상, 미래에 대한 논의보다는 당장 살아남을 방법을 찾아내야 하는 상황이다. 이런 위기를 극복하지 못한다면 대학의 미래는 암울하다.

 

우리는 지난 기간 동안 학과의 성장과 미래를 위한 생산적인 고민이나 진지한 평가보다는, 낮은 지표와 순위로 인한 발전계획 수립, 00 대책 수립, 간담회 등 회의와 의무적인 보고서 작성에 많은 시간을 할애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노력으로 인해 우리의 문제가 해결되었던가? 회의/간담회를 통해 끊임없이 현실에 대한 위기감과 경각심이 지속되었지만, 그동안 제출해 온 발전계획 중 실질적으로 예산지원과 더불어 실행되었거나 지속되어 온 것이 있는지 회의가 든다. 원칙과 신뢰가 없는 전시행정 및 정책이 반복되어 추진되는 동안 실질적인 학과의 경쟁력 강화 및 체질 개선은 요원해져 온 게 아닌가 한다. 다년간의 원치 않은 단련으로 인해 피로감과 타성은 커져 왔고, 우수학과와 비교해 부익부/빈익빈으로 열악해져 가는 학과의 교육/연구 환경 및 학과 경쟁력은 우리를 교수 본연의 의무에서 벗어나게 만들었고,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해결방안 보다는 단기적이고 면피용 해결방안에 고심하게 만들어 주었다. 학과에서 할 수 있는 노력은 다하였건만, 현실은 개선되지 않고 있으며, 학과의 발전을 위해 투자한 시간과 노력이 오히려 교수 개인에게 있어서는 본연의 의무를 이행하는 데 있어 큰 부담을 지우게 된다.

 

지표상으로 바닥권에 속한 학과의 경우 현실을 타개하기 위한 노력에도 쉽게 개선되지 않는 상황에 대한 자괴감 외에도, 대학 전체의 지표와 경쟁력을 갉아먹는다는 보이지 않는 질시와 압력에 상처를 입게 된다. 할 수 있는 노력은 다하였건만, 돌아오는 것은 개인의 희생이며, 개선되지 않는 현실이다. 아니, 오히려 악화되는 현실이다. 과연 이런 문제가 학과 차원의 문제일까? 학과 교수들의 노력을 통해 해결될 수 있는 문제였다면, 최소한의 개선이나 개선의 싹은 보였어야 하는 게 아니었을까? 우리는 아마도 끝없이 정상을 향해 돌을 굴리는 시지프스처럼, 우리는 우리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풀겠다고 끊임없이 자학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학 본부의 노력과 고심은 이해하지만, 대학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대책 마련과 수행을 위해서 모든 교수들을 똑같은 문제를 가지고 고심하게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기본적으로 교수 본연의 의무인 교육/연구/봉사를 충실히 할 수 있는 환경이 유지되어야 학과 자체의 경쟁력이 살아날 수 있다. 학과의 경쟁력 지표가 쉽게 개선되지 않는다고 조바심을 내더라도, 지표들은 장기적으로 개선될 수 있는 것이지, 단기적으로는 그 변화가 뚜렷하지 않거나 왜곡되어 보이기 쉽다. 사안이 위중하다고 하더라도, 모든 교수들을 검증되지 않은 단기적인 정책에 줄 세우기를 하는 일은 없기를 바란다. 특히, 우리가 과거에 겪어본 본부에 의한 인위적이고 강제적인 편제조정, 학과 통합 및 단과대학 통합은 그 과정 동안 학과 교수 및 학생들 모두에게 큰 심리적 부담을 주었고, 상생과 발전을 위한 통합이라기보다는 경쟁력 낮은 학과/단과대학에 대한 징벌적인 축소 방안이 되어왔다. 이러한 인위적이고 강제적인 통합의 결과는 그 구성원인 교수와 학생 모두에게 있어 혼란과 더불어 사기를 낮추고 발전할 수 있는 모멘텀을 잃게 하는 계기가 되어왔다.

 

우여곡절 끝에 다시 우리 대학 재단이 정상화되었다. 그러나, 현재 대학이 처한 상황에 대한 재단의 성실한 진단이나 과감한 투자/지원 방안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이 없다. 현재 우리 대학이 처한 상황은 교수와 학과를 넘어 전체 대학이 함께 노력해야 하는 상황이며, 이에 대해 재단도 예외가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대학의 적립금이 있다고 한들, 가장 필요로 하는 시기에 적절히 사용되어야 할 것이며, 이는 대학의 장기적인 발전전략 및 비전과 일치되어야 할 것이다. 특히, 대학의 발전력은 우수한 전임교원의 확보와 교수들이 자신들의 본분을 충실히 지킬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져야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당장의 생존이 급하다고, 장기적인 발전전략 및 비전을 등한시하면 안 될 것이다. 이미 벌어진 일은 돌이킬 수 없으며, 잘 수습하는 것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