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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라는 직분에 대한 단상

등록일 2019-02-15 작성자 교수회관리자 조회수 4091

교수라는 직분에 대한 단상

이 영 옥 (생명과학과)
    

  "... 고독과 소외가 영혼의 함양이나 지성의 수련에 얼마나 큰 축복이고 복음일 수 있는지 ..."
  거의 이십여 년 전, 서울 출장길에 기차 안에 비치된 코레일 잡지에서 읽은 위의 글귀가 내게 깊숙이 와 닿았다. 국문학자, 아니 굿 등 우리의 민속학 연구에 평생 매진하셔서 한국학자로 더 잘 알려진 고 김열규 교수(1932-2013)의 ‘열정적 책읽기, 독서‘란 책을 소개하는 글에 포함된 위의 문장을 읽고 하마터면 울 뻔했다.
  처음에는 이 책을 교내 도서관에서 빌려보다 ‘저자가 교수로서의 삶을 잘 사신 분‘이라는 생각에 정년을 몇 년 앞둔 나도 김 교수님처럼 살아야지‘하는 마음으로 책을 구매해 성서를 읽듯, 가끔 여기저기 한 문단씩 읽어보곤 한다.

 

  교수의 주 업무인 가르치고 연구하는 일을 과연 나는 잘 하고 있는지를 생각해볼 때 부족한 점이 한둘이 아니다. 우선 지난 학기에 내가 한 어떤 강좌에 대한 평가는 예전에 비해 유독 나빴으며 특히 그 강좌에 대해 성적이 좋은 편인 우리학과 학생이 평가한 내용은 나로 하여금 정신이 번쩍 들게 하였다. 보통 수강생들은 교수들의 강의 평가를 그저 성의 없이 형식적으로 하는데 반해 그 수강생은 나의 교수법과 교재 등을 조목조목 따지면서 반박하는 것이었다. 예를 들면, 해당 강의 내용의 요점을 제대로 짚어주지 않았고 또 강의 중에 내가 교재의 번역상태가 허술하다며 일부 내용을 수정해 주곤 했었는데 그 수강생은 해당 교재의 선택 자체를 문제 삼으며 번역상태가 나쁘면 원서(영어교본)를 교재로 정하면 되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원서를 교재로 사용하자는 그 학생의 제안은 본인을 제외한 타 학생들의 평균적인 영어해독능력을 감안하지 않은 어쩌면 본인의 영어능력을 뽐내려는 치기어린 생각 내지는 자기중심적인 생각에서 비롯된 마땅치 않은 해결책이긴 했으나 나로 하여금 자성을 유도해 결국 해당 강좌의 교재를 바꿀 생각을 하고 더 나아가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를 심사숙고하는 계기가 되었으니 좋은 일이다. 여담이지만 해당 강좌의 보고서조차 제출하지 않는 등 다소 건방진 태도를 보인 그 수강생이 괘씸하기도 했지만 ’누구나 실수를 하며 산다. 하물며 아직 생각이 여물지 않은 어린 학생인데...‘라는 생각에 괘씸죄는 주지 않았다. 그 대신 ’구성원간의 수학능력에 큰 차이가 있는 집단의 교육은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내게 남겼고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그 문제점을 최소화하려는 이런저런 시도를 할 작정이다.
   솔직히 이제 4년밖에 안 남았는데 그냥 하던 대로 동일한 교재(그것도 얼마 전에 개정되어 재작년에 강의록을 새로 만듬)로 대충하자는 생각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교수-학생간의 관계에서 강자인 내가 그들의 당연한 권리인 수업권을 소홀히 하거나 무시해버리는 행위는 요즘의 우리 사회에서 다반사로 행해지는 기득권자들의 갑질 행위와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다. 또한 학창시절에, 진정성을 가지고 제시한 자신의 의견이 의사결정과정에서 반영되는 것을 경험한 사람들은 사회에 나가서도 건강한 민주시민으로서의 소임을 다할 것이라는 기대도 한다. 그러한 구성원들이 우리 사회에 점차 많아져야 혼탁하기 그지없는 우리 사회가 건강한 사회로 전환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남은 임기동안 학생들을 지도하려고 한다. 그러다보면 4년 후, 좀 더 기쁜 마음으로 교수로서의 삶을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끝으로 시대와 무관하게 언제나 보편적인 인문학자로서 회자되는 에라스무스 폰 로테르담(Erasmus von Rotterdam, 1469?-1536)에 대한 평전을 쓴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가 권두언으로 쓴 아래의 글귀를 묵상해 본다. 최고의 학자로 인정받던 에라스무스는, 대립하던 구교와 신교 집단 모두 그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려했으나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고수했다고 한다.

 

  나는 에라스무스 폰 로테르담이 그쪽 편인지 알아보려 했다.
  그러나 양식 있는 어떤 상인이 내게 이렇게 대답했다.
  "에라스무스는 늘 자기 자신만을 대변하죠 (Erasmus est homo pro se)."
      - 「무명인사 서한집(Epistolae obscurorum virorum)」, 1515